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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시:2019년2월6일 카테고리:회사 블로그
INTEGRAL 창업 경위에 관하여
 
이번 글은 신에너지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최근 일본 기업들과 이야기를 할 때, 저(나카니시 고, INTEGRAL 창업자)의 자기 소개를 할 때 흔히 ‘독특한 경력이네요 “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희 회사의 웹 사이트도 덕분에 주간 미리보기 수, 방문수 모두 일정한 규모에 달하고,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글이 읽혀지기도 하고, 이에 INTEGRAL의 창업 경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간 미리보기 수, 방문수
 
최근 아시아 유학 협회의 대표의 집필 의뢰로, 사회인을위한 아시아 유학 정보 사이트 “アジアで学ぶ (아시아에서 배운다)“에 나카니시의 유학 ~ 창업까지 관련 기사 (https://asia-study.org/mba/experience-ceibs/)를 게시하였습니다. 원래는 일본인 사회 초년생을 위해 아시아의 비즈니스 스쿨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 하였지만, 후반부에는 INTEGRAL 창업까지의 경위 (NEDO사와의 만남, 중국 신에너지 산업에 관한 조사 시작) 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아시아에서 배운다”에 소개된 글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중국에서의 창업, 그래서 선택한 CEIBS (선택한 이유)
 
제가 중국에서 MBA를 공부하려고 한 것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중국에서의 창업을 매듭 짓자는 의미였습니다.
많은 비즈니스 스쿨 중에서 CEIBS를 선택한 것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에서의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와 네트워크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외국계 화학 기업에서 R&D를하고 있었을 때 중국에서 창업하기로 결심 한 것은, MBA 입학하기 약 5년 전의 일입니다.
“사람과 같은 일을 해도 의미가 없어. 살면서 한 번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열정을 불태우며 살고 싶다.”
라는 단순한 생각에 지금까지 해오던 유럽 및 미국에 관한 경력, 기술에 관한 경력에서 노선을 180도 전환하여 중국 비즈니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다른 중국 비즈니스 스쿨도 일부 고려해보았지만, 중국에서의 브랜드 파워는 거의 동일한 정도라는 인식에서 최종적으로 졸업생 네트워크가 광대한 CEIBS (MBA는 1학년 200명 정도, EMBA는 매년 700명 정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캠퍼스 방문을 통해 재학생과 대화하며 캠퍼스의 분위기를 알고, 나머지는 직관적으로 “여기다!” 라는 생각에 결정했습니다.
 
중략
 
MBA 후반 CEIBS 네트워크를 최대로 활용한 창업 준비
 
4번째 텀이 끝나고 처음 일년의 일정이 종료하여 학생들은 인턴 등 각각의 목적을 향해 일단 해산합니다.
 
제 경우는 처음 일년동안 학점을 모두 따고 인턴이나 교환 유학에 참여하지 않고 기업 활동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이 시점에서 졸업까지 앞으로 9개월 정도 남아 있었으므로, 졸업식까지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싶은 게 이유입니다.
 
저는 우선 제 대만인 멘터(CEIBS에는 멘터 제도가 있어, MBA 학생 한 사람에 대해 EMBA의 멘터가 붙습니다)에 상담했습니다. 그도 중국에서 젊은 나이에 창업해, 제로로부터 회사를 쌓아 올린 경영자입니다. 저랑은 평소에 중국어로 대화하며 중국인 제 아내까지 포함해서 가족들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신에너지/환경 분야에서의 일본 및 중국 기업간의 비즈니스 매칭이었습니다. 멘터에 CEIBS EMBA의 네트워크에서 누군가 경쟁력 있는 기술 혹은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경영자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즉시 휴대전화로 칭다오에 있는 단열 유리창 제조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간결하게 설명하면 승낙은 얻었으니 그에게 연락하도록 WeChat(중국판의 LINE과 같은 앱)으로 이 사장님과 계정이 연결되었습니다. 그것이 현재 제가 일본에서 하고 있는 일본 최초의 중국 단열유리 판매사업의 시작지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북경대, 청화대의 일본인 MBA생과도 교류가 깊어질 기회를 얻어, 어떤 계기로 인해 NEDO(신에너지 ·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가 일본인에 의한 중국에서의 창업활동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므로 CEIBS를 취재하고 싶다는 제의가 있어, 제가 가이드역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NEDO로부터 중국에 있어서의 신에너지 산업의 조사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의뢰를 받아 현재 제가 경영하고 있는 중국 신에너지 산업의 조사 · 컨설팅 회사(INTEGRAL Co., Ltd)의 설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제가 창업하게 된 계기, 그 모든 것은 CEIBS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입학할 때 마음에 두었던 2가지 목표는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CEIBS 덕분으로 자신의 직감을 믿고 CEIBS를 선택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에서 배운다」URL:https://asia-study.org
 
이어 지금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 “Billion Beats (21세기 일본과 중국의 미래 세대가 정치를 넘어 건설적인 만남으로 서로를 이해해 가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디어)”에 저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게재 (http://billion-beats.com/2018/05/03/oyama14-1/)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저의 학생 시절부터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쓰여져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illion Beats”에 소개된 글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 제14화> 33세 이과, 상하이 MBA → 상하이에서 창업. 색다르다는 무기
[전편] 상하이에서 창업. 원점은 20살의 홀로 여행.
2018년 5월 3일 / 중국 톱 MBA의 동급생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
 
중략
 
일본인 동급생 나카니시 고
1984년 파리(프랑스)출생. 4세까지 파리, 그 후에는 요코하마시에서 자람. 요코하마 시립 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 수료 후, BASF(독일에 본사를 갖고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 종합 화학 업체)의 연구직으로 입사. 2012년 홍콩에서 현지 스타트 업, 2014년 주식 회사 에자이 상하이 지사를 거쳐 2016년 CEIBS입학. 재학 중인 작년에 INTEGRAL.Co.,Ltd.를 창업.
 
중략
 
오오야마 : 나카니시씨는 작년 중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 상하이에서 창업을 하였습니다. 우선은 나카니시씨가 왜 중국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성장기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나카니시 : 사실 저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사원이시던 아버지의 파리 주재중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형과 누나가 있습니다. 4살 때 귀국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셨어요. 어머니는 3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는데 원래 전업 주부이시고 직업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서 우리의 생활은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 수입업 쪽으로 창업하셔서 지금도 장사를 하십니다. 생활비는 송금하고 계셨던 거 같지만, 아버지와 내가 재회한 것은 20년 뒤 누나의 결혼식에서 입니다.
 
오오야마 : 나카니시씨의 출발은 프랑스이셨군요.
 
나카니시 : 그런 상황 때문에 어렸을 적에는 그다지 학업에 열중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한테 공부에 대해서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요. 대학은 요코하마시립대학과 게이오대학에 합격했습니다만, 가계에의 부담과 가고 싶은 학부를 생각해 요코하마시립대학에 갔습니다. 전공은 이학부 기능과학과(機能科学科)입니다.당시는 제약 연구를 동경하고 있었고, 요코하마시립대는 바이오 의약 연구 분야에서 유명했거든요.
 
오오야마 : 현재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 말고는, 해외와는 인연이 없는 생활이셨네요.
 
나카니시 : 20세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해에 井深大 장학기금(소니 창업자 井深大씨의 유산으로 설립된 장학금. 매년 전국의 대학에서 10명 정도 학생을 선발하고 학비와 학생의 과외(課外) 활동을 지원)의 장학생으로 뽑혔고 그 자금을 자본으로 미국 서해안을 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난한 여행이었지만, 거기서 자신보다 젊고 행동적이며 꿈을 가진 외국인과 만났고,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오오야마 : 그렇군요.
 
나카니시 : 중국, 인도, 러시아, 영국, 스웨덴,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전세계의 젊은이가 각각의 목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고교생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긴 여름방학에 세계를 여행한다고 한다든지. 함께 메이저 리그를 보러 가거나, 거리를 산책하거나, 밤에는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부유층의 러시아 학생은 미국의 대학에 유학하기로 했습니다. 빈곤층인 인도 학생은 장학금을 받았으며 현지에서 호스트패밀리도 발견해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호주 학생은 대학에 들어가면 맹렬히 바빠지기 때문에 입학 전에 세계를 눈으로 보기 위해 혼자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 난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세계에는 이렇게 많은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는 젊은이가 있네’. 영어를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오오야마 : 배움을 행동으로 옮겨 영어를 공부를 시작하신 것도 대단하네요.
 
 
26세, 승부를 위해 홍콩에
나카니시 : 생화학(당단백제제제 합성연구)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 수료 후 독일 본사의 종합화학업체인 BASF의 도쿄지사에 R&D(연구개발)직으로 입사하였니다. 동료 인도인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함께 놀러가기도 햇습니다. 그는 똑똑하고 사교적이며 많은 것을 배웠으나,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승진해 가는 그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리더십 프로그램”(간부 후보생용의 프로그램, 외자 기업에서는 입사 시점으로부터 간부 후보는 별도 채용으로, 입사 후도 다른 트럭을 걷는 일이 많다)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오오야마 : 일본 기업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기업은 적지요.
 
나카니시 : 그는 인도경영대학원(Indian Institutes of Management)을 졸업했는데, 그뿐 아니라 리더십 프로그램에 뽑힌 외국인들은 머리가 좋아서 이대로는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서서히 비즈니스 영역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당시 중국이 세계에 대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현상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북경, 상하이, 시안을 여행했습니다. 향후 중국에서 비즈니스 찬스가 태어나면 직감하고 그들과는 다른 필드에서 승부 하겠다고 다짐하며 3년으로 퇴사. 중국어를 할 줄 몰라서 먼저 게이트웨이인 홍콩에 갔어요.
 
오오야마 : 일본에서 홍콩에서 일자리를 찾으셨나요?
 
나카니시 : 아니, 홍콩에 가서 직장을 구했어요. 그리고 일본인 소유의 스타트 업에 취업했고 2년 정도 일했습니다.
 
오오야마 : 업종은?
 
나카니시 : 상사입니다. 단열도료 등 기능성 도료나 포름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화학촉매의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중국 및 해외에서의 판매하는 일입니다. 원래는 자동차용 액정 디스플레이 등의 수입을 하고 있는 회사로, 화학품 부문의 신규 설립 때 스태프 제1호로서 참여했습니다. 거기서 부문 매니저로서 홍콩인이나 중국인의 스탭을 고용 영업 팀을 만들어 갔습니다. 카탈로그 등 아무것도 없고, 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홍콩 디즈니랜드에 바닥을 미끄럼 방지 도료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어 배우기 위해 베이징으로
오오야마 : 그 후 왜 베이징에 가셨죠?
 
나카니시 : 중국어를 늘리려면 중국 본토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북경어언대에 반년 동안 어학 유학을 가서 주식회사 에자이의 상하이 현지법인에 취직했어요. 일자리 구하기는 힘들었지만 우연히 운좋게 에자이상의 상해지사 부사장이 원래 있는 프라이빗에퀴티펀드의 창업자로 그의 눈에 띄어 Business Development(사업개발)직으로 소속되었습니다. 에자이에서는 2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오오야마 : 나카니시씨 같은 경력 개발은 재미도 있고, 의지를 느껴 매력적으로 생각해요.
 
나카니시 : 상하이에서 실제로 일해 보고, 중국 비즈니스에서는 인맥이 가장 중요하다고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에 중국에서 가장 양질의 인맥을 쌓아 창업으로의 발판을 얻을 것을 기대해 CEIBS에 들어갔습니다.
 
오오야마 : CEIBS의 수험 공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나요?
 
나카니시 : 아니요, GMAT(해외 MBA에 응시하는 학생들이 응시하는 시험)은 정말 고생했어요. CEIBS로부터의 장학금을 노리고 고득점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만, 혼자 공부하기도 해서 간단하게 점수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또, 직전까지 직장에 이야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하면서 공부하기란 힘들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급우들을 스카우트
나카니시 : CEIBS의 교수나 졸업생의 멘토로부터 지원이나 조언을 받으면서, 작년 상하이에서 창업했습니다.
 
오오야마 : 어떤 비즈니스 모델입니까?
 
나카니시 : 중국기업의 해외판로 개척 지원, 제품 수출입을 하고 있으며, INTEGRAL. Co. Ltd.이라고 합니다. 일본 기업의 중국 진출 지원은 많았지만 중국 기업의 일본 및 기타 해외진출 지원은 아직 미미합니다. 그걸 노렸습니다. 고객의 대부분은 중국 기업이고 비즈니스 언어는 99% 중국어입니다.
 
오오야마 : 비즈니스 파트너는 누구인가요?
 
나카니시 : 창업 파트너 라파엘은 CEIBS의 첫학기, 같은 그룹에서 만났어요. 그는 사실은 오오야마씨의 BillionBeats의 기사에도 등장하였니다. 칭하이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지요.
 
오오야마 : CEIBS의 첫학기는 정말 힘들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도 많기에 멤버들과는 가족처럼 친하게 되었죠.
 
나카니시 : 맞아요. 그는 저처럼 연구 개발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 가난했던 등 공통 경험도 있었기에 곧바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창업 준비 단계에서 중국인과 창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인간성을 보고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있었고, 혼자하기에 쓸쓸하기도 했기에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오오야마 : 어떻게 우수한 인재인 라파엘을 설득했어요?
 
나카니시 : 스쿨 가까이의 CEIBS 학생이 자주 가는 바(Bar)로 가서 리스크는 전부 내가 질게, 너도 창업한 적이 있다고 주위에 말해 보고 싶지, 라는 느낌으로 설득한 결과 순조롭게 “좋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창업을 하고, 같이 중국의 여러 곳을 갔었습니다. 현재 그는 취직의 길을 선택하여 파트타임 기준으로 일을 돕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제대로 경험을 쌓고 다시 풀 타임으로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저희 회사의 쉐어홀더입니다.
 
 
제조 원가는 일본의 1/5
오오야마 : 중국 비즈니스의 백미란?
 
나카니시 : 뭐니 해도 스케일과 속도감입니다. 여기에서는 명확한 (제대로 돈을 만들어 내는) 비즈니스 모델과 행동력이 있으면, 뭐든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야마 : 구체적으로 실감한 것은?
 
나카니시 : 저희는 중국의 한 태양광 패널 · 전지 회사의 해외 판로 개척권을 가지고있습니다만, 판로 개척을 시작한 지 불과 1개월 만에 메가솔라 기지 설치의 수요가 있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놀랄 만한 수량의 태양광 패널의 문의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원자재가 자국에서 조달할 수 있고, 제조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제조 원가가 일본보다 1/5정도입니다. 상담도 일본과 달리 2~3회로 일이 마무리 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스케일과 스피드감이 중국 비즈니스의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오오야마 :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나카니시 : 중국인 사장은 아주 “현물주의”라는 것입니다. 정보에 대해서 돈을 내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컨설팅 등의 서비스는 스타트업 기업에서는 어렵겠지요. 이 시장에 이러한 수요가 있다고 하는 시장 분석 보고서를 내더라도 우선 한푼도 낼 수 없습니다. 제대로 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어지는 제안, 예를 들어 실제로 바이어를 발견하고 바로 판매계약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겨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이것이 일본과 달리 어려운 점입니다. 행동력과 영업 센스는 중국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필수 요소죠.
 
 
CEIBS 네트워크 덕분에 창업할 수 있었다
오오야마 : CEIBS에서 얻은 것은?
 
나카니시 : CEIBS 입학은 창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고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였습니다. 최초의 중국회사 고객도 실은 CEIBS 졸업생이 오너를 맡고 있고, 제 멘터(CEIBS에 입학하면 모든 학생에게 졸업생의 멘토가 제공된다)가 소개해준 것이 계기입니다. 당사의 현재 고객 및 협업 파트너는 대부분 CEIBS나 중국의 MBA 관계자들입니다. CEIBS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러한 네트워크에는 접근할 수 없었으므로 CEIBS 덕분에 창업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CEIBS의 브랜드는 중국에서는 강하고, 막 창업했을 때 여러가지 사장님과 접촉할 때에 힘을 발휘했습니다. 학술적인 면에서도, 재무, 회계, 마케팅, 전략의 기초를 MBA에서 배운 것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오오야마 : 상장을 목표로 합니까?
 
나카니시 : 무슨 일이 있어도 상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상장이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를 보다 확대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니까요.
 
오오야마 : 향후 관심 있는 분야는?
 
나카니시 : 중국의 재생 가능 에너지의 방면에 가능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장래는 자기 발전 자기 소비에 의한 완전 오프그리드(발전한 전기를 매전売電하지 않고, 자급하는 것)의 주택이나 상업 시설이 증가한다고 직감적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장래는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비즈니스를 통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오는 시대에 대비해, 중국의 회사, 바이어, 투자자와의 관계 구축을 중심으로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창업하면서 진정한 창업에 대비하는 그런 느낌이네요.
 
가족이 제일 소중합니다. 일은 남자의 로망이라고 할까요. ^^

오오야마 : 아내분은 베이징에서 알게 되셨죠?
 
나카니시 : 베이징 어학학교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느라 제가 그녀에게 말을 건 게 계기예요. 그녀는 북경의 대학을 졸업 후, 미국의 조지타운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Google등에서 수년간 일하고, 북경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오오야마 : 행동력이 대단하시네요. ^^ 작년에 아이가 태어난 타이밍에 창업했습니다만, 부인은 이해해줬나요?
 
나카니시 : 사귀기 시작할 무렵부터 계속 창업한다고 하였고, CEIBS에 온 것도 창업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와이프의 맹공을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 물론, MBA를 졸업하고 왜 이렇게 급료가 적냐고 따지는 일은 있습니다. ^^ CEIBS졸업생의 평균 급여는 높으니까요.
 
오오야마 : 워크 라이프 밸런스는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나요?
 
나카니시 : 일과 가족은 전혀 별개입니다. 아이와의 시간은 최고이고, 가족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은 남자의 낭만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오오야마 : 나카니시씨의 꿈은 무엇입니까?
 
나카니시 : 우선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희생하는 일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오오야마 : 중국인 아내분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나카니시 : 와이프는 CEIBS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우수한 학생을 전 세계에서 모으기 위한 마케팅 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오오야마 : 육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나카니시 : 와이프의 어머니와 파출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중국식이지요.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는, 향후 고민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과 중국인 양쪽 모두의 좋은 점을 가져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가정내에서는 완전히 중국어만 사용해서 아이에게 말을 걸 때는 일본어로 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창업도 취업활동도 실패. 형에게 송금을 부탁한 인생 최대의 좌절
오오야마 :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를 가르쳐 주세요.
 
나카니시 : 베이징 어학 유학을 마친 뒤, 사실 한 차례 창업을 목표로 했는데, 준비 안 돼 자금이 떨어져 형에게 의존해 버렸어요. 드디어 지갑도 텅텅 비어서 형에게 돈 마련하여 송금을 부탁했을 때, 사정을 모르는 형은 매우 걱정하면서도 묻지 않고 송금해 주었습니다. 일본을 떠날 때, 해외에서는 모두 자기책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들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형한테 폐만 끼치고 만 이때가 저의 가장 큰 좌절입니다.
 
오오야마 : 그랬군요.
 
나카니시: 하지만 여기서 귀국하면 패배자라고 생각해하여 3개월은 힘내자고 자신을 격려하며, 현지에서 취업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편에서 언급했지만, 전직이었던 에자이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오오야마 : 분한 생각은?
 
나카니시 : 결국 중국어가 어설프고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경험이 없던 저에게는 승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단 현지에서 취직을 하기로 한 셈이지만 취업 활동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한 화학회사의 관리직 쪽에서 일본에서의 취업 경험이 너무 짧다는 이야기와 다시 한 번 일본에서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했습니다. 홍콩의 스타트업으로 비즈니스를 처음부터 해본 경험은 일본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보다 몇십배의 무게가 있고 지금의 일의 베이스가 되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경험이 일본계 기업에서는 평가받지 못한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오오야마 : 일본 대기업의 평가 요소는 세계적으로 보면 독특하지요. 하지만 나카니시씨와 같이 비즈니스를 시작한 경험을 중요시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나카니시씨의 회사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나카니시씨도 저도 CEIBS에 들어가서 정말 다행이네요!
 
 
 
 
일본과 중국은 좋은 의미에서 강점도 약점도 매우 달라 앞으로는 쌍 국가의 기업이 서로 이해하고 서로 양보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형성하고 갈 때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질적인 일본 기업의 중국 진출 지원이란 일본 측에서 기업의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중국 측에서 일본에 손을 뻗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INTEGRAL은 시작되었습니다.
 
INTEGRAL 현재 사업 확대를 위해 증원 중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홈페이지에 새로운 멤버 소개도 업데이트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2월 말부터는 새로운 중국 바이오 연료에 관한 조사도 시작 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블로그와 보고서를 통해 어느 곳보다 자세한 중국 신에너지의 최신 동향을 전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INTEGRAL Co. Ltd 2019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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